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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국방

6·25 전사자 발굴유해, 고(故) 명한협 일병으로 153번째 신원확인

1951년 6월 강원 춘천 가평-화천 진격전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 69년만에 가족 품으로

(대한뉴스 한원석 기자)=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017년 5월 2일 강원도 춘천 오항리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를 고(故) 명한협 일병(현 계급 일병)으로 신원 확인했다. 고 명한협 일병의 신원확인은 2000년 4월 유해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뜬 후 153번째이다.

이번 신원확인은 아들인 명갑원(72세)씨가 2010년에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고 10년을 기다려오던 중, 발굴된 유해와 고 명한협 일병의 유전자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통해 부자관계를 확인하여 이루어졌다. 

고 명한협 일병은 부산 육군 훈련소로 입대 후 국군 제 6사단 소속(추정)으로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가평-화천 진격전(1951. 5.22. ~ 5.30.)을 겪은 후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평-화천 진격전은 국군 6사단이 중공군(제187, 188, 189사단)의 공격을 막아내고 화천까지 진격한 전투였다.

이 교전에서 경계부대인 6사단 2연대는 3일 동안 중공군의 공격을 방어해내고 공격으로 전환했다. 이에 중공군은 가평 북측으로 후퇴하게 됐으며, 6사단은 이들을 추격하며 가평과 춘천을 거쳐 화천 발전소까지 60Km가량 진출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치열한 전장에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전사하신 고 명한협 일병은 안타깝게도 69년이 지나서야 대퇴부, 윗 팔 부분의 유해 몇 점만 후배 전우들에게 발견되었으며, 단서가 될 수 있는 유품은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고 명한협 일병은 1925년 8월 28일 경남 사천시 이홀동 일대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사자는 어려서부터 심성이 착하고 부모님께 효도를 많이 하여 가족들이 장남인 고인에게 의지를 많이 해왔다. 이후, 고인은 아내 이분악씨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외아들 명갑원씨를 키우며 가장으로서 아내와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1951년 2월경, 고인은 26살이 되던 해 세 살배기 아들을 두고 국가를 위해 군대에 입대하여 6·25전쟁에 참전했다. 아내 이분악씨는 평생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1993년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아들 명갑원씨는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포기하고 살았는데 찾게되어 정말 기쁘면서도 믿기지 않아 덤덤한 마음”이라면서 “빨리 아버님을 만나고 싶다.”라고 말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유가족들과 협의를 통해 귀환행사와 안장식을 치르고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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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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