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0 (일)

  • 맑음동두천 9.9℃
  • 맑음강릉 10.7℃
  • 맑음서울 8.9℃
  • 맑음대전 10.4℃
  • 맑음대구 10.8℃
  • 맑음울산 10.5℃
  • 맑음광주 10.8℃
  • 맑음부산 11.2℃
  • 맑음고창 10.5℃
  • 맑음제주 11.3℃
  • 맑음강화 7.1℃
  • 맑음보은 9.3℃
  • 맑음금산 9.6℃
  • 맑음강진군 11.9℃
  • 맑음경주시 11.7℃
  • 맑음거제 11.4℃
기상청 제공
월간구독신청

인물&탐방

불자가수 머루 포교사, 새 앨범 ‘평화의 불’ 반응 뜨거워

KBS신인무대에서 금상수상, 각종 트로트차트 휩쓴 실력자


 

선묵혜자스님과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 순례기도회를 가면 늘 갈색법복에 모자를 쓰고 음향과 음악을 맡아서 법회를 진행하는 포교사가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산사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하고 3000명 이상의 고정팬을 가지고 있는 행복한 가수, 노래하는 머루 포교사를 만나봤다.

 

불자가수 이전에 듀엣 머루와 다래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무명가수생활을 오래하다가 1987KBS 신인무대에서 머루와 다래로 듀엣을 결성해 노래 심봤다로 상을 받았어요. 당시 금상을 받아서 KBS에서 뒷받침을 해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밤무대에서 번 돈을 들여 내 생애 못잊을 사람’, ‘진또배기’, ‘정선아리랑등이 수록된 정식 음반을 취입하고 스타탄생,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등에 출연하고 각종 트로트 차트 9위까지 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그렇지만 방송을 타려면 홍보비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더 이상 못하고 포기했지요. 그러다가 가수분과위원회 소속 불자가수들 10명이 찬불가옴니버스 앨범을 냈어요. 이 앨범으로 활동을 시작한 게 노래하는 포교사의 시작입니다.

 

당시 불교에서 찬불가가 생소했다고 들었습니다.

, 제가 불자가수회를 만든 창립 멤버지요. 당시에 찬불가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법당에서 춤추고 노래를 부른다고 노보살님들한테 쫓겨나기도 했어요.

옴니버스 앨범이후 찬불가 독집앨범을 내고 전국의 행사를 찾아 자진해서 가 공연을 했지요. 이것이 산사음악회의 시초가 되었고 불교계에서 머루포교사로 더 알려지기 시작하고 불자가수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새로 앨범이 나왔습니다. 소개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제가 대중가요 음반은 2, 불교음반으로는 5집을 냈는데 이번에 새로 앨범이 나왔어요. 타이틀곡은 평화의불이고 무상초라는 곡은 제가 꼭 불러보고 싶었던 곡인데 예전에 가수 김무한의 노래로 심진스님께서 리메이크한 걸 듣고 감동을 받아 제가 이번에 불렀습니다. 꽁지빠지게라는 노래는 후배 국도영이 세월이 꽁지빠지게 달아난다는 세월의 무상함을 담은 내용의 가사를 써왔는데 10분만에 제가 곡을 만들었습니다.

 

타이틀곡이 평화의 불이라면 선묵혜자 큰스님이 떠오르는데 두 분의 인연을 말씀해주세요

큰스님께서 도선사주지에 취임하시고 청담스님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가 KBS주최로 열렸는데 그때 처음 뵙고 스님께서 주최하는 경로잔치를 맡아서 했어요. 그러다 스님 출판기념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108산사순례회가 결성이 되어 저도 동참했지요. 그런데 108산사 노래 공모전이 열린다는 말을 듣고 도선사 석불전에서 기도하며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었는데 제가 만든 노래가 당선이 되었어요.

공모전에 당선되어 스님께 아주 큰 선물을 받았는데 스님께서 MBC ‘아가마의 길이라는 인도 전역에서 부처님의 걸어온 길 성지순례하는 촬영에 제가 시봉자로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21일동안 큰스님을 따라 걸으며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15년이 넘는 세월을 모시고 있습니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3월달에 ‘108산사순례길 12주년 기념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108산사순례단 수천명이 함께 금강산 신계사에 평화의 불을 들고 갈 것을 소망하고 저도 그곳에서 노래 부르길 소망합니다.

 

취재후기

운명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결정이다. 머루포교사는 불교가 모태신앙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수덕사의 작은 말사 스님이셨고 4-5세 때부터 목탁을 치고 천수경을 하며 동자승으로 할아버지 스님들과 탁발을 다니곤 했단다. 크면서 또래친구들의 놀림이 싫어 음악에 빠져들었고 결국 도망쳐 가수가 되고 싶어 서울에서 작곡가 사무실을 찾아다녔다. 자신의 음반을 내 성공가도에 들어섰지만 결국은 불교로 다시 돌아와 동산불교대학, 아메리칸 선종대 삼장대학원, 법사품수를 받았다. 오늘도 그는 3000여명이 넘는 보살님들의 열광적인 성원에 힘차게 노래한다.

프로필 사진
조선영 기자

'정직,정론,정필'의 대한뉴스




배너